케빈 대톨라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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목차
1. 개요2. 미국 프로야구 시절3. LG 트윈스 시절4. 연도별 주요 성적5. 기타6. 관련 문서

1. 개요 [편집]

1967년 11월 23일 ~ (58세)

LG 트윈스에서 1999년에 뛰었던 미국 출신의 외국인 선수. 한국에 오기 전에 대만 리그에도 뛴 적이 있다. 문제는 이 때 팀 선수들과 함께 승부조작을 하다가 걸리는 바람에 망했어요.

2. 미국 프로야구 시절 [편집]

마이너리그에서만 뛰었다. ML 경험은 전혀 없었다.

3. LG 트윈스 시절 [편집]

1999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의 트라이 아웃 평가전에서 6경기 타율 0.364 홈런 3개를 기록했고 3루 자원을 찾고 있던 LG 트윈스와 계약하게 되었다. 하지만 문제는 대톨라가 여태까지 3루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었다.[1][2] 뿐만 아니라 코칭스텝은 안 그래도 불안한 3루수뿐만 아니라 팀 사정에 따라 1루수, 외야수 가리지 않고 마구 포지션을 이동시켰고 그것이 영향을 미쳤는지 평범한(당시 주요 에 비하면 형편없는) 성적을 기록하고 1년만에 한국 생활을 마감했다.

최종 성적은 101경기 타율 0.279 9홈런 42타점.

4. 연도별 주요 성적 [편집]

역대 기록[3]
연도
소속팀
경기수
타율
안타
2루타
3루타
홈런
타점
득점
도루
볼넷
사구
삼진
출루율
장타율
OPS
1999
101
.279
74
12
1
9
42
33
0
26
4
49
.349
.434
.783
KBO 통산
(1시즌)
101
.279
74
12
1
9
42
33
0
26
4
49
.349
.434
.783

5. 기타 [편집]

타격 후 1루로 달리다가 다리가 풀려서 넘어진 적이 있었는데, 이후 그가 쓰던 방에서 성인용품이 잔뜩 나왔다고 한다. 그 후 방을 물려받은 해리거가 이 때문에 부인에게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.

6. 관련 문서 [편집]



[1] 당시에는 자원이 부족했기에 일단 선수를 뽑은 후 포지션 이동을 시키는 것이 당연시되긴 했다.[2] LG의 부족한 마운드 사정을 감안하면 외국인을 투수로 뽑을 필요성이 있었으나 이때 구단들은 전체적으로 타이론 우즈의 대성공에 끌린 나머지 외국인 타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.[3] KBO에서의 성적만 기입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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